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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토피아
  Author : 황성혁     Date : 06-01-19 14:02     Hit : 27783    
 
 
2005년 12월 30일 대한조학회지 제 42권 제4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유토피아

그 나라는 몇 십 년 동안 외세의 압제에 시달렸고, 외세로부터 해방된 뒤 또 몇 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이 이어져 백성들의 삶은 열등감과 궁핍으로 극도로 찌들렸었다. 참담한 삶으로부터 헤어나기 위해 백성들은 온갖 궂은 일을 마다 하지 않고 악착같이 일했고 그들의 삶은 곧 피나는 경쟁이었다. 개인적인 편안함은 물론, 누리고 싶은 자유도 희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삶이 좀 윤택해 지고 어려웠던 시절을 모르는 세대들이 자라면서, 인생이란 그렇게 팍팍하게 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여유있게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백성들 사이에서 형성되었고 지도자들은 백성들의 뜻을 적극적으로 받들어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처음 정부가 착수한 것은 교육제도의 개혁이었다. 학생들과 그 가족들의 일상생활을 지옥으로 밀어 넣는 입시 경쟁을 없애고, 누구나 가고저 하는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제도를 고쳐 나갔다. 학교 사이의 차별을 철저히 배제하고 학생 사이의 수준을 고르게 하고 혹시 성적이 떨어지는 청소년들이 상처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학생들 사이의 성적 평가는 하지 않았다. 창의성의 개발은 몇 사람의 뛰어난 학생만 두드러지게 하는 폐단이 있어서 극도로 제한되었다. 모두들 꼭 알아야 하는 평범한 것만 쉽고 편안하게 가르쳤다. 학교의 학습분위기는 자유스러워 졌고 자연히 어디서도 긴장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나, 명문이라 자랑하던 학교들은 자연스럽게 따돌림을 받았고, 스스로 주변의 수준으로 낮추어 가는 지혜를 배우게 되었다. 지도자는 평화스러운 사회를 만드는데 필요한 교육의 수준을 상세하게 법으로 정했고, 학생들을 그 이상의 수준으로 가르치는 것을 엄격하게 금했다. 학교들과 학부모들은 처음 잘 적응 하지 못하고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결국 그처럼 편안하게 사는 것도 하나의 삶이라고 받아 들이게 되었다.
 
지도자가 다음에 착수한 것은 개인적인 지능이나 외모의 차이에 대한 배려였다. 남보다 못한 모습으로 태어난 사람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잘난 사람들은 여러모로 조심하도록 했다. 지능이나 체격, 용모에 따라 차별을 두는 모든 법은 폐기되었고 누구나 어디서나 동일한 조건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보다 우월하다고 우쭐 대던 사람들은 그것이 단지 부모로부터 얻은 것이며 하등 그 자신의 능력과 관계없음을 깨달았다. 정신적 단련은 물론, 얼굴이나 몸매를 가꾸지 않게 되었고 심지어 얼굴에 검댕이 묻거나 생채기가 나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잘나지 않은 것이 행복한 사회가 되었다. 남녀간의 차이도 없어졌다. 여자도 남자가 하는 일을 나누게 되었고 집에서 가사를 돌보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남자들의 수가 늘어 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출산율은 떨어 졌고 인구는 계속 감소 되었지만 사회개혁의 자연스런 부작용으로 백성들은 가볍게 받아들였다.
 
군인들에게도 같은 배려가 있었다. 군대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고려하려 병영의 주거 환경을 병사들이 집같이 느끼도록 고쳤고 여가의 선용을 바깥 사회의 젊은이들과 같이 하여 군인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줄이도록 고심을 하였다. 개개인의 양심에 따라 군대 입대를 하지 않겠다고 주장 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고려되었다. 자기가 쏜 총소리에 놀라서 자지러드는 젊은이들과 규칙적인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능한 한 개성에 맞도록 재편성 하였다. 군대는 점점 일률적 통솔 체계가 붕괴되고 인간적인 자유집단이 되어 갔다. 명령 같은 것은 하지 않게 되었고 상하 명령관계는 친근한 동료 관계로 변질 되어갔다.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점점 시민들의 폭력에 노출되어 갔으나 보호되지 못했다. 피의자들의 인권이 철저히 보호 되어야 했기 때문에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하면 대부분 사건의 해결은 쉽게 미궁으로 빠졌고,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비난이 돌아갔다. 그들의 부주의로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회를 불안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 나라의 외교정책도 모습을 바꿔 갔다. 그때까지 외교의 기준이 되던 경제적 이해 관계나 군사적 유대는 무시되고, 백성들의 정서에 맞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로 주변국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였다. 가난한 이웃나라의 어려운 삶에 대해 끝없는 동정을 보냈다. 식량도 보내고 돈도 보내고 심지어는 발전소도 짓고 공장도 세워 주었다. 이웃 나라는 모든 원조를 받으면서도 온갖 트집과 전쟁 위협을 일삼았으나 백성들은 그들이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한결같이 참았고, 눈에 보이는 전쟁 위험은 애써 외면했다. 한편으로 주변의 강한 나라에게는 당당했다. 강하고 부유하다고 오만한 나라들에게는 일전도 불사한다며 떳떳하고 강하게 맞섰다. 물건을 많이 사가는 나라가 물건사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물건 팔지 않는다고 대꾸했고 또 실제로 수출을 중지했다. 그 나라가 어려웠을 때 도와준 나라들이 옛일을 내세워서 생색을 내면 그건 그들이 그들을 위해서 온 것이지 그 나라를 위해 온 것이 아니라고 코웃음을 쳤다. 그런 호언 장담은 열등감에 찌들렸던 백성들의 마음 속 몇 십 년 묵은 체증을 시원하게 뚫어 주었고 백성들은 정부를 계속 지지했다.
 
지도자들은 드디어 가장 어려운 경제문제에까지 그들의 꿈을 실현시켰다. 백성들의 끈질긴 염원인 빈부의 차이를 없애는 일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경제계는 투자나 관리에 있어서의 집중과 차별을 주장했으나 무시되었다. 새로운 부의 창출 보다는 갖고 있는 부를 효율적으로 나누면 백성들은 만족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경제계는 창조적 기술만이 먼 장래의 번영을 확실히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지만, 새로운 기술이나 창조적인 개발은 있는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주어 빈부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뿐 이라는 진보적 백성들의 주장을 따랐다. 재투자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재투자는 불필요하게 회사의 크기를 키우고, 다시 빈부의 격차를 창출하기 때문이었다. 돈 있고 잘난 척 하던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 들고 모두가 동등해 진데 대해 백성들은 환호작약 하였다. 옛날 밭 갈고 소 치던 평화로운 생활 모습을 되 찾은 기쁨이 거기 있었다. 으시대던 기업가들도 결국 그들의 주장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살기로 동의하고 있었다. 노동자들과 사용자와의 관계도 합리적으로 안정되어 갔다. 노사간의 분쟁은 종식되었고, 노동자들은 회사의 모든 결정에 관여하게 되었고, 회사의 이익은 회사 직원들에게 골고루 분배되었고, 매일매일의 작업은 관리자가 아닌 작업자 자신들의 자발적인 통제로 운영되어 갔고, 회사의 주인은 없어졌고 결국 회사는 종업원의 것이 되었다. 그러한 긍정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골수 차별주의자들은 대대로 그들의 조상이 살았고 조상들의 유골이 묻힌 그 나라를 떠나 다툼과 경쟁이 지배하는 삶의 질이 열악한 외국으로 떠나갔다.
 
그 나라의 군대와 경찰은 점점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 갔고 국방과 치안을 위한 예산은 사회복지를 위해 전용되었다. 창조를 위한 노력과 경쟁에서 빚어 지는 긴장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워 진 그 나라는 점점 줄어드는 재원을 있는대로 골고루 나누어 가지고 자족했다. 한때 불필요 하게 확장되었던 교육계는 점점 축소 되어 갔고 머리 좋은 학생과 나쁜 학생들, 여성과 남성,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그들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동화 되었으며 모든 백성들 사이에 더 이상의 우월감이나 열등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나라는 이 지구상에서 확실히 소멸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