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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南京 大虐殺
  Author : 황성혁     Date : 05-11-25 14:22     Hit : 13053    
 
 
한국경제신문 2005년 11월 18일자에 실린 Essay입니다.

 
南京 大虐殺

11월 초 난징 방문하는 길에 난징 대학살 기념관을 찾았다. 70년이 지난 세월에도 그 주변의 음기는 가슴을 써늘하게 하였다. 1937년 12월 13일부터 38년 1월까지 한달 반 사이에 인구 60만의 도시에서 30만 명이 학살 당했다고 했다. 구덩이마다 수만 명의 해골이 한데 뒤엉킨 채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 곳은 증오의 현장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수십 명씩 줄을 지어 참배하고 있던 중국 학생들은 온몸으로 일본에 대한 증오를 들어내고 있었다. 안내인은 말했다 “우리는 이것을 학살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도살이라고 부릅니다. 일본인들은 사람 죽이기를 파리 죽이듯 했고, 중국인을 개 돼지 보다 못하게 여겼습니다.” 일본 군인이 타고 다니던 말이 죽었을 때 그 짐승을 묻기 전 중국인의 목을 제물로 바쳤다고 했다. 일본도로 중국인 200명을 먼저 참수하는 사람이 이기는 시합을 벌였다는 두 일본 군인의 사진도 있었다. 강간과 성폭행은 헤아릴 수 없었다고 했다. 내 앞을 가던 나이가 지긋한 영국인이 말했다. “영국도 여러 식민지에서 잔혹한 짓들을 저질렀지만 이건 아니야. 이건 인간의 악마적 참혹사야.” 나는 안내인에게 물었다. “그래 일본사람들은 뭐라고 하는가” 안내원은 말했다. “그들은 학살이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단지 전쟁 중에 일어난 전쟁 행위의 일부분이라는 거예요.” 일본 사람들이 호전적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은 왜 거기까지 가서 그렇게 못난 전쟁을 치루어야 했는지 생각할수록 가슴이 무거웠다.

일본 수상은 결연한 표정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속한다. 순국 선열이 잠들어 있는 신사 참배를 결국 중국이나 한국사람들도 이해할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의 참배가 무명 용사들이 아닌, 주변 국가에 참화를 저지른 전쟁 범죄인들에게 하는 것이며, 일본 군국 재건을 위한 구상의 일부라는 주변 사람들의 의구심은 무시된다. 주변 국가들이 그를 그의 방식대로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은, 주변의 소리에 귀를 막는 일본 정치의 한계이며, 스스로의 코 앞 밖에 보지 못하는 수상의 어리광 같아 보인다.

일본은 과거에 대해 너무 많이 사과를 해서 더 이상 사과 할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의 사과는 하나같이 현학적 수사에 불과했었다. 잘못했다고는 하는데, 인정하는 잘못이 없었다. 난징 대학살, 종군 위안부, 세균 연구소의 인간 생체실험, 학살과 징발에 대해 어느 것도 인정한 적이 없었다. 용기 없는 사람들. 일본에 용기 있는 지도자가 있어, 신사에 보란 듯이 나서기 보다, 난징 대학살 현장에서, 종군 위안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실들을 인정하고 진실된 사죄를 하며 그에 걸맞은 보상을 약속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순간 아시아 전체가 달라질 것이다. 아시아인들 사이의 진정한 이해와 평화가 시작될 것이고 일본은 세계로부터 진솔한 이해와 존경을 받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후손들은 지긋지긋한 과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세계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희망찬 앞날로 나아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