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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눈.
  Author : 황성혁     Date : 21-01-04 09:17     Hit : 4459    

첫눈

 

아침 밥을 먹는다. 창밖으로 눈이 소복이 쌓였다. 세설이 바람에 한가롭게 하늘거린다. “중앙공원이나 걷고 올까?

반응이 없다.

“중앙공원 걷고 따끈한 하트 사케 한잔 어때?

아내에게서 반응이 온다.

“어디서 할건데?

예전에 눈 오는 날 중앙공원을 걸어 내려가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고래불에 앉으면 고운 주인 할머니는 그녀가 특별히 만든 안주와 따끈한 정종을 내놓았다. 고래불이 문을 닫은 지도 몇 해가 지났다. 큰 수술을 한 뒤 걷기를 싫어하는 아내의 걷겠다는 반응에 고무되어 한발 더 나선다. AK Plaza 어때?

아내가 승낙을 한다.

AK Plaza 에 장볼 일도 있으니 AK Plaza 에 가자.

마치 걷는 것이나 하트 사케에는 흥미가 없고 장 보는 것 때문에 가준다는 어조이다.

 

열시 반이 지나 집을 나선다. 집 뒤로 불곡산의 산자락을 넘으면 불정로 큰 길에 놓인 고가도로이다. 산책로로 만들어 놓았다. 경사진 길에 눈이 쌓였다. 온 동네 아이들이 프라스틱 썰매를 가지고 나섰다. 코로나 때문에 갇혀 지나던 나날을 봉창이라도 하려는 듯 모조리 길에 나서 환호작약이다. 눈발이 자란다. 아파트 단지 사이의 산책로로 접어 들었을 때는 함박눈으로 변한다. 새빨간 구기자 열매가 눈에 감춰지고 있다. 아파트의 아이들이 모두 나왔다. 알프스 산의 스키꾼들 처럼 차려 입고 썰매질이다. 거기를 지나면 분당에서 제일 큰 길 중 하나인 돌마로다. 돌마로에도 고가도로가 놓였고 산책길이다. 집에서 나와 신호등에 막히지 않고 산책하듯 사무실 까지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돌마로를 지나면 분당천이다. 분당천을 건느면 중앙공원이다. 평시에 사람들로 들끓던 중앙공원이 오히려 한산하다. 조용히 산책하는 사람들이 펑펑 쏟아지는 눈 사이를 그림자처럼 서성인다. 우리는 아주 천천히 걷는다. 혼자 걸을 때 집에서 중앙공원 입구까지 십오분 중앙공원 지나는데 십오분 중앙공원에서 나와 사무실까지 십오분 정도 걸린다.  그러나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중앙공원을 나서니 벌서 한시간이 지났다. 처음으로 신호등을 기다려 큰 길을 건넌 뒤 AK Plaza 로 향한다. 그동안 씩씩하게 걷던 아내의 목에 걸린 듯한 ‘아이구’ 소리가 나오기 시작된다. 힘이 부친다는 증거다. 힘을 북돋우기 위해 내가 너스레를 떤다.

“아이구 소리 하지 마세요. 걷기만 하세요. 아이구는 제가 대신 하겠습니다.

나의 아이구와 그녀의 아이구가 번갈아 발을 맞춘다. AK Plaza 제일 위층 ‘스시 이자이’에 앉는다. 하트 사케 대포 두잔과 스시가 나온다. 뜨거운 사케에 그녀는 금방 기력을 회복한다.

“이 사케가 뜨거울 때는 독한 것 같더니 식으니까 맹물이잖아?

내가 알아 모신다. 남자 종업원을 불러 너스레를 떤다.

“이집에 사케는 리필 해 주지요?

그는 씨익 웃기만 한다. 아내가 통큰 결정을 한다.

“사케 대포 두잔 더 주세요.

종업원은 사케 대포와 더불어 안주꺼리까지 푸짐하게 가져다 놓는다. 아내의 얼굴이 딸기처럼 새빨게지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선다. 창밖에 눈발이 서서히 잦아든다. 올해 첫눈의 아베크도 소슬하게 막을 내린다.